법명사

혜국스님─ 인연법은 향상의 법문

페이지 정보

작성자 법명사 댓글 0건 조회 1,017회 작성일 14-06-04 15:05

본문

 

인연법은 향상의 법문    혜국스님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녹야원에서 최초로 인연 법을 설하시어
5비구를 제도하셨습니다. 이 5비구 가운데 한 사람인 마승존자는
천성이 점잖을 뿐 아니라 길을 갈 때는 마치 코끼리의 왕처럼 앞만
보고 갈 뿐 이리저리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존자의 걸음걸이는 적정 그 자체였습니다.
뒷날 부처님의 가장 큰 제자가 된 사리불 존자가 출가를 하기 전의
어느 날,사리불은 마승존자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크게 느낀 바가
있어 물었습니다.

"존자께서는 어떠한 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습니까"
"나의 스승은 카필라국의 왕자로서 출가하여 정각을 이루신
석가모니부처님입니다.'
"그분께 어떠한 것을 배웠습니까?"

모든 것은 인연을 좇아 생겼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노라
어느 누구든지 이 인연 법을 깨달으면
그는 곧 참된 도를 얻게 되느니라.

마승존자는 이 게송을 들려 준 다음 말했습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언제나 이와 같은 법을 설하십니다."
사리불은 마승존자의 이 한마디 게송에 반하여 친구인 목련과 제자
250명을 데리고 죽림정사로 가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자연법과 인연 법이 이야기에서처럼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모든 것이 인연에 의해 생겨나고
인연에 의해 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도 인연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인연에 의해서 파괴됩니다.
모든 것은 인연의 기운에 의해 돌고 있으며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주 대 자연의 법칙을 인연 법이라고 합니다.

그럼 이 우주 대자연의 인연법칙을 알고자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먼저 '나'를 알아야 합니다.
인연법칙이라는 것도 자연법칙이라는 것도 결국 '나'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나'를 알아야 하고 '나' 쪽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곧 인연법칙과 자연법칙의 중심에 '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 '나'를 알고 참 '나'를 바로 보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의 두 눈을 가지고는 우주 생성원리와 대자연의 법칙과 인연의
법칙을 알 수 없습니다.

'나'의 두 눈으로는 내가 왜 저와 같은 남편을 만나게 되었으며,
왜 저와 같은 부인을 만나게 되었는지 왜 이 땅에 태어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의 두 눈으로는 모양 있는 것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눈으로 모양있는 것만 보려고 하지 말고
마음으로 모양 없는 것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두 눈에 시계의 초침이 째깍째깍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만
시침이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시침이 너무 느리게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한 송이 꽃이 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피는 모습은 보이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꽃이 너무 느리게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총알이 날아오는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눈에 보이면 다 피하지 왜 맞아 죽습니까?
총알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세계 또한 우리 두 눈으로는 볼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는
칠판이 전체라고 하면 칠판에 찍은 점 하나를 보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마음으로 볼 때는 다릅니다.
마음으로 본다는 것은 이러한 느린 움직임의 벽과 빠른 움직임의
벽을 허무는 것입니다.

이 벽들이 무너지면 곧 바로 마음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눈으로만 보면 현재만 보이지만, 마음으로 보면 과거와 미래가
다 갖추어져 보입니다.실로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라는 것이 무엇인가?
불교에서는 이를 마음이라고 합니다.
불교의 우주관에 입각하여 보면 이 우주에는 부처님의 세계가 있고,
천인. 아수라. 인간의 세계가 있고, 지옥. 아귀. 축생의 세계가
있습니다.

부처의 세계는 100% 광명의 세계이고, 지옥은 100% 어둠의 세계입니다.
저는 법문 중에 자주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신경질 나고 짜증날 때 비닐봉지 안에 입김을 불어 모아놓고
그 색깔을 보십시오.
반드시 새카만 색이 나옵니다.
반대로 마음이 안정되고 남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보다는내가 이 우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가질 때 입김을 불어 색깔을 보십시오.

아주 안정된 사람은 백색이 나올 것이고 조금 덜 안정된 사람은
회색이 나올 것입니다."
우리 인간 세계는 50%는 백색이고 50%는 흑색으로 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의지하여 살고 있는 땅덩어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낮이 반이요 밤이 반이며, 기쁨이 반이요 슬픔이 반이며,
남자가 반이요 여자가 반입니다.

여기 지남철이 하나 있다고 해봅시다. 지남철의 한쪽 끝은 N극이고
다른 한쪽 끝은 S극입니다.
이 지남철을 잘드는 쇠톱으로 정확하게 중간되는 지점을 끊어보십시오.

두 동강 난 지남철이 서로 붙어 있어야 할텐데, 어느 사이에 두
조각이 N극과 S극을 각각 형성하여
반은 튕기고 반은 붙게 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지구의 법칙이 그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남철이 먼지가 되어도 반은 튕기고 반은 붙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주 자연법칙과 돌아가는 기운이 그렇게 되어 있으며,
우리 인간도 이 법칙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50%는 백색이요, 50%는 흑색으로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심성도 50%는 인격으로, 50%는 감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백색을 흑색위로 65%쯤 올라가게 하는 것을 곧 우리의 인격을
65%쯤 되게 하고감정을 35%쯤 되게 하여 인격이 감정 위로 올라서도록
하는 것을부처님께서는 올라가는 것(向上)이라고 하셨습니다.
"올라가라, 인연의 법칙을 알고 싶으면 올라가라" 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마음이 맑아지고
맑아지면 과거. 현재. 미래를 다 갖추어 볼 수 있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앞에서 저는 '우주의 생성원리를 알려면 나 쪽으로 돌아 오라' 고
하였습니다.

내가 생긴 원리를 알면 우주가 생긴 원리를 알 수 있고, 우주의
원리를 알면 곧 나를 알 수 있습니다.
과연 이 '나'는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부처님께서는 우리 육체의 구성요소를 지. 수. 화. 풍의 네 가지로
설명을 하셨습니다.우리의 몸의 살은 흙에서 빌어왔기 때문에
죽어서 썩으면 다시 흙으로 돌아갑니다.
눈물과 콧물과 피와 소변 등은 물에서 빌어왔습니다.

죽는 날 까지 얼마만큼 빌어 쓰다가 죽으면 다시 물로 돌아갑니다.
몸의 따뜻한 기운은 불에서 빌어왔고 움직이는 기운은 바람에서
빌어왔습니다.죽어 불기운이 다하면 몸이 싸늘해지고 바람 기운이
빠져나가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럼 이 지. 수. 화. 풍의 네 가지 기운은 누가 빌어온 것인가?
바로 '마음'이라고 하는 주인공이 빌어온 것이며,
'마음' 이라는 주인공이 현재의 모양으로 만든 것이 나의 몸뚱이입니다.

이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크게 지. 수. 화. 풍의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허공이 있는데
이 허공을 인간에 대비시켜 불교에서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인간과 세계의 원리는 일맥상통합니다.

나를 알면 이 세계가 생긴 원리를 알게 됩니다.
그럼 인연법칙이란 무엇인가?
지. 수. 화. 풍의 네 가지를 마음이라고 하는 주인공이 모양을
만들어 돌아가게 하는 것!
곧 삶이 인연법칙이라고 합니다.

인연과 운명
우리의 마음은 모양이 없습니다.
모양이 없지만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하는 생각이 모양을 만들어 냅니다.
곧 생각이 필름에다가 사진을 찍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지. 수. 화. 풍을 가져다가 만든 이 몸은
내가 과거에 찍어놓은 사진에 의해 움직여가고 있습니다.

이를 불교에서는 업력(業力)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업력에 의해서만 살아가는 것을 운명 또는 숙명이라고 합니다.
곧 '어떤 부모를 만나 몇 살 때까지는 어떻게 살다가
어떤 사람을 만나 몇 살 때까지는 어떻게 산다' 는 것처럼
사진 찍어 놓은 대로 살아가는 것을 '운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진은 언제든지 새로 찍을 수 있습니다.
이미 찍어놓은 사진을 싹 지우고 다른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타고난 선천대로의 운명을 과감하게 지우고
새 사진을 찍는 것을 불교에서는 '인연법칙' 이라고 합니다.
그 사진은 오늘 새로 찍을 수도 있고 내일 새로 찍을 수도 있습니다.
깨어있으면 항상 새로 찍을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양은 눈에 보이지 않은 에너지에 의해 움직임을
당하고 있습니다.지구가 돌아가는 것도 내가 살아가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발휘하면 새로운 움직임을
창출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본인은 움직이고 싶지 않은데 이미 결정지어진 대로
움직임을 당하는 것을 '운명'이라고 하고, 자의에 의해 움직이는
에너지를 '인연'이라고 합니다.
즉 우리의 삶이 과거의 선천적인 잠재의식에 눌림을 당할 때 이것을
'운명'이라고 하고,현재의식이 잠재의식을 눌러 버리는 것을
'인연'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연을 중요시하는 우리불자들은 인연 법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어떻게 사는 것이 인연 법으로 사는 것인가?
내가 즐겨 예로 드는 한 편의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
옛날 한 순간에 집안이 몰락하여 거지가 된 이가 있었습니다.
보통 거지는 문전걸식하며 하루 끼니를 얻기 마련인데,
이 거지는 어떻게나 복이 없었던지 동냥을 다니면 밥을 얻기는커녕
몽둥이 찜질을 당하거나 개에게 물리기 일쑤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주린 배를 달래기 위해 남의 집 쓰레기더미를
뒤져 먹을 것을 찿았습니다. 그렇게 기막히고 비참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그는 자기의 박복한 삶에 대해 염증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그는 마을 뒷산으로 갔습니다.
밧줄로 올가미를 만들어 소나무 가지에 묶고 목을 매려는 순간
갑자기 허공에서 호통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쓰레기 스무 포대를 먹을 업을 지은 놈이 어찌 세 포대밖에 먹지
않고 죽으려 하느냐!"

아직 열 일곱 포대의 쓰레기를 더 먹어야 하니 죽을 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환청과도 같은 허공의 소리에 거지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어차피 스무 포대를 먹어야 할 운명이라면 빨리 찿아 먹자.'
그날부터 거지는 조금도 운명을 탓하지 않고 열심히 남의 집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찿았습니다.

그런데 두 포대 분을 채 찿아 먹기도 전에
거지는 우연히 만난 귀인의 도움을 받아 전처럼 잘 살게 되었습니다.

흔히들 우리는 '인연 따라 산다.' '인연대로 되지' 라고 합니다.
이것이 집착을 놓기 위한 말이라면 수긍이 되지만,
만일 포기하고 내버리는 식의 말이라면 부처님께서 크게 꾸짖을
노릇입니다.

인연 따라 살겠다는 말!
이 말은 '좋다. 오히려 얼마든지 오라. 내 운명은 내가 개척해
나가겠다'는 것입니다.앞에서도 이야기하였듯이 운명대로 간다는
것은 흑색 쪽으로 내려가는 것이고,
개척하여 올라간다는 것은 백색 쪽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쓰레기 스무 포대를 먹도록 운명이 지어져 있지만,
'운명이여, 나는 너를 피해 가지 않겠다. 너를 기꺼이 받아들여
해결해 나가리라' 하면서 굳게 마음을 다지고 실천을 하게 되면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운명을 극복하고 올라가는 길을 택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릅니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 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작품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인간의 육신은 초월해야 되고 이겨내어야 할 과정이지,
이 상태로써 내가 만족해야 할 구조가 아니다.'
아주 멋진 말입니다.

이 몸이라고 하는 것은 이겨내어야 하고 올라가는 쪽으로 이끌어가야
하는 것임을 천명한 말입니다.
그러나 올라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므로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합니다.
마음 주인공이 뜻을 분명히 하여 게으름에 빠지는 이 몸과
정신상태를 잘 독려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 순간마다 기로에 서 있습니다.
백색 쪽으로 올라갈 수도 있고 흑색 쪽으로 내려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을 믿는 우리는 당연히 백색 쪽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기도도 하고 참선도 하고 경전공부도 하십시오.
열심히 기도하면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습니다.
백색이 70%쯤 올라가면 부처님의 세계가 어렴풋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음의 작용을 확고히 믿어야 합니다.
흔히들 극락과 지옥이 마음에 있다고 하지만, 마음에 있으면
실제 세계도 있습니다.

분명히 지옥도 있고 극락도 있습니다.
마음 세계에 있는 한 실제로도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실로 '나' 스르로 생각하여 '될 대로 되라'고 하는 자포자기의
상태가 되면 마음 주인공의 인격이 무시되어 완전히 흑색의
세계가 됩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거나 참선. 경전공부 등을 하면
맑은 기운이 올라가서 자연법칙이나 인연법칙이 생생하게 보입니다.
흑색을 위로 올리느냐, 백색을 위로 올리느냐?
지금 내 몸 안에 있는 기운이 흑색은 얼마나 되고 백색은 얼마나
되는지를 관찰해 보십시오.

더욱이 인간의 몸은 받았을 때가 가장 올라가기 좋은 때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실로 삼악도인 지옥. 아귀. 축생의 몸을 받으면
업 따라 운명 따라 살 뿐, 개혁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몸을 받았을 때 올라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실천하여 백색광명을 이루어야 합니다.
인간의 몸을 받은 바로 이때 마음을 몸뚱이 심부름하는 존재가 아니라
주인공으로 살 수 있게끔 해야 합니다.

거듭 강조하오니 자기의 운명을 개척하여 올라가는 인연의 길을
만들어 갑시다. 그 속에 행복의 빛이 있고 해탈의 광명이 있으며
부처님께서 인연 법을 설하신 참 뜻이 간직되어 있습니다.

부디 모든 불자들이 인연 법을 깨우쳐 백색광명으로 해탈하기를
축원 드립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종무소 전화번호 : 032-577-5108